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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 탐방

마음을 담아내는 방송인, EBS박보* 동문(인문학부 99)(2009.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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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WRITER :
총동문회
DATE :
2020-01-02 오전 10:55:28

누구나 한번쯤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빨간 불이 들어온 수많은 카메라와 화려한 조명 아래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방송을 하는 짜릿함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나운서들의 화려한 이야기보다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소박한 이야기를 들려준 자랑스런 아주인, 박보*(인문학부 99) 동문을 만났다. 

경력 7년 차의 베테랑 아나운서인 박보* 동문.

 

박 동문은 2003년 안동 MBC 아나운서로 입사하며 방송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첫 중계차 방송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떨렸다는 그는 “처음 중계차 생방송을 하러 갔는데, 새해 첫날 산 위에서 해돋이 광경을 중계 방송 해야 했어요. 해 뜨기 전에 산에 올라 가야 하니까 어둑어둑한 산을 오르긴 했는데 너무 춥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처음인 탓에 떨리는데, 추워서 입이 꽁꽁 얼었었어요.”라며 첫 방송의 기억을 꺼내 놓았다. 카메라가 그를 향하고, 빨갛게 불이 들어온 순간, 준비했던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는 그는 ‘어떻게 첫 방송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 당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 방송 끝나고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어떻게 나왔는지, 말은 잘 했는지 여쭸더니,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 엄청 씩씩하더라’였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방송의 기억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아나운서였지만 그의 안동 생활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지방 방송국은 인원이 많지 않아서 아나운서라고 해서 방송 진행만 하지는 않는다고. “라디오 방송은 직접 녹음하고 편집에 송출까지 했는데, 한번은 실수로 ‘아, 이거 아니다’ 하고 말한 부분을 잘라내지 못해 그대로 방송에 나간 적도 있어요.”라며 아찔한 실수담을 털어놓았다.

 

TV 뉴스, 라디오 뉴스뿐 아니라 TV 라디오의 프로그램 진행, 그리고 나래이션까지 담당했던 그는 아침 여섯시 시사프로그램부터 밤 열시 라디오 프로그램인‘별밤’까지 안 해본 프로그램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4년을 지낸 그는 만능 방송인이 다 되었다. “아나운서는 앵무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 보다 방송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그는 아나운서가 된 이후에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 ‘노력파’이다.

그런 그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다. EBS의 경력 아나운서 모집에 응시한 것이다. 각지에서 경력 아나운서들이 모여들었지만, 합격의 기쁨은 그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2007년 9월부터 EBS 아나운서로의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종영된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코리아 코리아’와 명사와 스승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명사의 스승’을 진행했던 그는, 현재 매일 밤 9시 30분에 방송되는 EBS 뉴스를 진행하며 EBS를 대표하는 아나운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녀의 꿈이 대학 초기부터 아나운서는 아니었다. 취업 준비를 따로 한 것도 없었고 그저 대학생활을 충실히, 열심히 보냈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던 그는 학생시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아는 야무진 대학생이었다. 호기심 많고 당당했던 그는 “전공 외의 수업도 궁금해서, 그래서 심리학 수업도 들어보고 공대의 기초 과목도 수강해봤어요. 머리로 외울 수 있는 공식은 전부 외웠는데, 계산기를 사용해서 답을 내는 건 역시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해 볼 수 있는 기회여서 참 좋았어요.”라며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 마는 당찬 모습을 보였다. 관심 있는 동아리나 대학 활동에는 혼자서라도 찾아 참여했다며 “한번은 다른 학교에 유명한 밴드부가 있다고 해서 혼자 찾아가 본 적도 있어요. 그러면서 차츰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대담하고 당당한 성격을 만들어 나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방송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작업 하는 일인 만큼 그의 이런 경험과 성격은 현재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인성과 자질은 모두 학생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취업 걱정으로 인한 조급함으로 스펙을 쌓는 데에만 전념하는 후배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보였다. “물론 점수도 중요하지만, 기본 점수만 넘으면 그 다음은 사람을 보고 판단해요. 요즘은 방송직원 한 명 뽑는 데에도 합숙까지 하며 사람 됨됨이를 보고 선발할 정도예요. 그 됨됨이는 학생시절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학점이나 영어점수 보다 인성을 갈고 닦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거듭 강조한다.

 

그가 아나운서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졸업 후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휴학 한번 없이 졸업한 그는, 일반 사무직을 뽑는 한 회사에 합격했다. 하지만 “막상 합격통지를 받고 보니 출근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취업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죠.”라며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내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의 심사숙고 후‘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장래희망란에는 항상 아나운서라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나운서의 꿈을 키워온 것 같다’고 웃는다.

 

목표를 정한 그는 바로 방송 아카데미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아나운서 공채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수백 대 일,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이 새삼스럽지 않은 아나운서. 한 해에도 수천 명의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합격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다. “정말 예쁜 사람도 많고, 뉴스를 잘 읽는 사람도 많아서 학원이나 면접장에 가면 위축된 것도 사실이예요. 하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열정이 넘쳤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정말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 했어요.”라는 그는 남들보다 시작이 늦은 만큼 더 열심히,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그리고 ‘하늘의 별 따기’라는 아나운서라는 별을 단번에 따냈다.

 
마지막으로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유명한’ 아나운서 보다는 ‘좋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단다. ‘작은 프로그램이건 크고 유명한 프로그램이건, 아나운서로서 맡은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싱그러운 미소를 앞으로 브라운관을 통해 자주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글 / 사진 홍보팀 학생인턴 길은경 -
[출처] 마음을 담아내는 방송인, EBS박보* 동문(인문학부 99)(2009. 07. 06)|작성자 아주대학교 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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