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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 탐방

美 화장품회사'나테라 인터내셔널' 송진국 회장(2016.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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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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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문회
DATE :
2020-02-10 오후 1: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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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받고 일하겠다. 일단 써달라. 마음에 들면 그때 월급을 달라."

 

27세 송진국은 영어로 이렇게 휘갈기듯 쓴 종이를 화장품회사 '코스메틱 스페셜티 랩(Cosmetic Specialty Lab)' 사장에게 내밀었다. 아주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 오클라호마로 건너간 직후의 일이었다. 2차 오일쇼크로 미국 경제도 휘청거리던 시절이었다. 애초에 취직하고 싶었던 정유회사는 "이미 직원을 2000명이나 해고했다. 당신을 고용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화장품회사를 찾아갔으나 역시 "사람을 뽑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송진국은 "사장을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면서 로비에서 버텼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사장이 로비로 내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송진국은 "취직을 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사장은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어가 짧은 탓이었다. 송진국은 황급히 종이를 꺼냈다. 펜을 쥐고 써내려갔다. "나는 한국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화장품 연구원으로 일을 잘할 자신이 있다. 돈은 받지 않겠다." 사장은 재밌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오케이.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미국에서의 첫 취직이었다.


미국 화장품회사 '나테라 인터내셔널(Naterra International)'의 송진국(63) 회장은 "브로큰 잉글리시로 모든 것을 돌파했던 시절"이라면서 웃었다. 나테라 인터내셔널은 현재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만 3만㎡(9000여평)에 이르는 공장과 6300㎡(1900여평) 크기의 본사를 두고 있는 화장품 회사다. 이곳에서 내놓는 목욕용품 브랜드 '트리헛(Treehut)'은 수십 년째 미국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유아용 화장품 '베이비 매직(Baby Magic)'은 20년 넘게 존슨앤존슨 다음으로 미국 판매 2위다. 자회사인 '뷰티 매뉴팩처링 솔루션스(Beauty Manufacturing Solutions)'에선 로레알, 로라메르시에 같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을 OEM 생산한다. 최근엔 영국 '토니앤가이' 출신인 앤소니·팻 마스콜로(Mascolo) 부부와 손잡고 '티지(TIGI)'라는 헤어살롱 제품과 메이크업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난 송 회장은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는 미국에서 영어도 잘 못 하면서 살아남으려면 결국엔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브로큰 잉글리시로 미국회사서 1등


―영어도 잘 못 했는데 어떻게 계속 일하셨나요.

"성실했거든요. 그때 연구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미국 직원들이 생각보다 일을 열심히 안 하더라고요. 시간만 때우고. 저는 그 회사에서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고, 가장 늦게 퇴근했어요. 단순히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었던 것만은 아녜요. 쌓인 업무를 빨리빨리 제대로 처리했어요. 나중엔 회사에서 아예 연구실 열쇠를 제게 맡기더라고요. 2년 정도 일하니까 연구실장 직함을 줬고요. 그러다가 당시 회사가 파트너들끼리 싸움이 나서 여러 개로 쪼개졌는데, 다들 나를 제품 개발팀장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했어요. 안 갔죠. 대신 제 회사를 차렸어요. 그게 아마 1985년쯤일 겁니다."


―잘 됐나요.

"아뇨(웃음). 처음 2~3년은 수익이 거의 없었어요. 집에 월급을 못 갖다줄 정도였으니까요. 캐모리라는 화장품 회사를 차려서 여기저기 물건을 팔다가 접었고, 그 담엔 알로에베라를 주성분으로 하는 화장품 회사를 차렸어요. 그걸 나중에 남양 알로에베라에 팔았죠. 그렇게 한 10년 보내고 나서야 안 망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법을 터득했어요. 그러고 나서 1995년에 나테라 인터내셔널을 차렸죠."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송진국은 직접 월마트·K마트 등을 다니며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때도 여전히 영어는 짧았다. 바이어들은 그의 앞에선 열심히 웃고 박수를 쳐줬으나, 뒤돌아서선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송진국은 그들을 다시 찾아갔다. 두 번째 세 번째 방문할 땐 그들도 웃음을 거두고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제품을 사줬다고 했다.

―비결이 뭐죠?

"인상적이니까요.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요. 제가 얼마나 기억에 남겠어요. 두 번째 가면 다들 절 기억해줬어요. '아, 미스터 송! 또 왔어요?' 하고 놀라면서요. 그땐 제품을 실제로 써보고 테스트해보죠. 세 번째 가면 사는 겁니다. '제품 참 좋던데요!' 하면서요. 망신당한다고 창피하다고 물러설 거면 애초에 미국엘 오지 말았어야 했고, 사업도 시작하지 말았어야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신뢰 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약속을 지키는 거예요. 납품 기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켰어요. 내가 할 수 없는 프로젝트는 덜컥 맡지 않았고요. 요즘에도 능력 안 되면서 일단 '할 수 있다'고 덜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약속 못 지키는 회사 많이 봐요. 나는 절대로 그렇게 일하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정확히 설명했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죠."

 

―그 과정에서 회사가 망하지 않는 비결을 터득하셨다고 했죠.

"빚을 지지 않으면 돼요. 범법 행위를 하지 않으면 되고요. 그 두 가지만 지키면 회사는 절대로 망하지 않아요. 나테라 인터내셔널을 차리고 나선 한 번도 빚을 지지 않았어요. 빨리 성장하겠다는 욕심으로 허겁지겁 달리지 않았어요. 순간순간 해야 할 일을 했고, 지킬 약속을 지켰어요. 그러다 보면 회사는 크는 겁니다."

 

실수를 권장하라

 

 송 회장과 함께 만난 영국 브랜드 '티지' 창립자 앤서니·팻 마스콜로 부부는 10여년 전 처음 송 회장을 만났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앤서니는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줄 회사를 제때 찾지 못해 끙끙대고 있을 때 미스터 송이 방법을 찾아줬다"면서 "그는 성공의 규칙을 알 뿐 아니라, 그 규칙을 깨고 혁신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빚을 내지 않는 데만 집착하다 보면 큰돈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고, 그러면 혁신도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요.

"아뇨. 혁신은 돈과 관계가 없어요. 마인드셋(사고방식)의 문제죠.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큰 글로벌 회사들 보면 직원이 2000~3000명씩 돼요. 그런데 이런 회사가 차고에서 2~3명씩 모여 연구하는 젊은 학생들 아이디어를 수십억달러씩 주고 사들이는 걸 종종 본단 말이죠. 우리 회사는 직원이 250명쯤 되거든요? 그중 연구팀은 30명쯤 돼요. 미국이나 유럽의 큰 화장품 기업은 자체 R&D팀 직원만 300명씩 되는데, 늘 우리 제품을 사가요. 그럼 우리가 돈을 많이 투자해서 이긴 거냐, 아니란 말이죠."

 

―그럼 뭐로 이긴 걸까요.

"실수 덕에 이겼죠.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해도 절대 벌을 주지 않아요. 대신 게을러서 일을 망친 경우엔 엄벌합니다. 실패와 실수는 할수록 경험이 되니까, 맘껏 해보도록 권장해요. 토론도 많이 시켜요. 저는 생각이란 좌우·상하·시계방향·시계반대방향으로 다 흘러야 막힘이 없이 문제가 풀린다고 믿어요. 제품 하나를 개발해도 이게 최선인지 몇 달이고 토론하고 고민해보라고 하죠."

 

―회장님이 한 실수 중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일까요.

"너무 많은데요(웃음). 1987년인가 '소 페이스(So Face)'라는 남성 화장품을 런칭했어요. 그때만 해도 남자 화장품은 애프터셰이브밖에 없을 때였는데, 우리는 스킨·로션·세럼까지 만들었거든요. '타깃' 같은 미국 대형마트에 쫙 깔았는데 망했어요. 돌아보면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요. 과학적이지 못했죠. 마케팅도 과학이니까요(웃음)."


보검(寶劍)보다 좋은 식칼이 낫다

최근 나테라 인터내서널은 한국에 '나테라 코리아'를 설립했고, 프랑스에도 '나테라 프랑스' 사무실을 차렸다. 송 회장은 "전 세계에 나테라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다.

 

―굳이 그렇게 확장하지 않아도 사업이 잘 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돈은 벌 만큼 벌었어요. 그런데 꿈이 자꾸 변하더라고요. 예전에 사업 시작할 땐 '100만달러만 벌면 그만 일하고 쉬어야지' 했어요. 막상 100만달러를 벌고 나니 그땐 또 400만달러는 벌어야 쉴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죠. 그다음엔 수익 1000만달러는 달성해야 은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막상 1000만달러까지 벌고 나니 그땐 '은퇴하면 뭐해. 새로운 일을 해야지' 싶은 거예요. 요새는 명품을 만들고 싶어요. 샤넬·루이비통 같은 그런 값비싼 제품 말고 코카콜라나 빅맥, 박카스나 야쿠르트처럼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 하나쯤 만들고 은퇴하고 싶은 거죠."

 

―럭셔리보단 필수품이 명품이라는 겁니까.

"무협지를 보면 보검(寶劍)을 차지하려고 다들 싸우잖아요. 보검을 지닌 사람은 누군가를 죽이고 또 결국 죽임을 당하죠. 그런데 식칼을 지닌 사람은 그걸로 장사하고 돈 잘 벌 수 있단 말이죠. 저는 좋은 식칼을 만들고 싶어요. 직원들에게 헌신하고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가다 보면 식칼로는 1등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좌우명이 있습니까.

"'좋은 시민이 돼라(Be a good citizen)'는 겁니다. 법 잘 지키고 세금 잘 내고 내 할 일을 잘 하는 사람이죠." 송 회장은 "영웅이 되는 것보다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며 "지난 21년간 나는 이 좌우명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써왔다"고 했다. "덧셈·뺄셈도 못하면서 곱셈·나눗셈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원본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02/20160902013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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