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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소식

대우학원 설립자 김우중 회장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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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총동문회
DATE :
2020-03-10 오전 10: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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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대우학원의 설립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12월9일 별세했다. 향년 84세로

약 1년의 투병 생활 끝에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정·재계 인사와 문화·체육인,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을 비롯해 고인의 뜻과 의지에 공감하는 8000여 명이 빈소에 다녀갔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아주대학교병원 별관에서 엄수됐고, 유가족과 아주대·아주대의료원 교직원, 전 대우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게 진행됐다. 김우중 회장은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 나라 안 보다는 밖을, 오늘보다는 내일을 바라본 선구자였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하면 된다’의 신념으로 뛰어들었고,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일에 몰두했다.

다음 세대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본인 세대가 희생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 열심과 헌신의 바탕이 됐다.

 

김 회장은 1967년 나이 서른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섬유회사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대기업도 수출하면 밑진다고 생각하던 시절, 신생 회사 대우실업은 와이셔츠를 비롯한 의류제품을 해외에 팔아

고속성장을 이어갔고 1969년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를 세웠다. 이후 그는 선진국이 나가 있지 않은

미지의 시장을 계속 개척해나갔고 회사는 경공업, 중공업, 금융업 등으로 범위를 넓히며 성장했다.

창업 후 30년 동안 그는 1년의 3분의2 이상을 해외에 머물며 지구를 240바퀴 도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사람이 한 군데 미치면 도(道)가 트이게 된다’ 라는 신념을 공유하는 이들이 그 길에 함께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경제의 최첨병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내 경우만 해도, 아무도 안 가려 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샘플가방 하나만 들고 반 트럭 같은 차 뒤에 매달려

터덜거리며 돌아다닙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내가 제일 먼저 왔다는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

우리가 개척한 나라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아프리카 같은 경우는 우리가 갈 수 있는 나라보다 못 가는 나라가

더 많았습니다. 이런 곳을 우리가 처음으로 들어가서 정식 수교를 맺도록 발전시켰습니다.

말로는 쉽지만 생명의 위태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정말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입니다.

우리가 처음 들어가 성공하면 다른 기업들도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1991년 7월23일, 신입 사원과의 대화 중)

 

 

기업가로서의 사명과 후대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김우중 회장은 오지 의료지원 사업과 기초학문

연구 지원에 사재를 출연했다.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하고(1977년) 아주대학교에 재정적 뒷받침을

이어온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생전 아주대에서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신장섭 저)>출간 기념회에서도 청년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일제시대 때 태어나 해방 후 한글로 교육받은 첫 세대에 해당합니다.

부모 세대의 희생 덕분에 해방된 조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는 일찍이 사업에 투신했고

세계를 무대로 성취를 향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국가와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가장 값진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선배 세대로서 아쉽고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우리가 다시 의지를 모아 여러분이 선진 한국의

첫 세대가 되도록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진출하거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세계를 무대로 경쟁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우중 회장은 ‘세계경영’의 뜻과 노하우를 젊은이들과 나누고자 했다.

마지막 열정을 쏟아낸 곳도, 유지로 남긴 뜻도 바로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청년사업가 양성교육)’ 이었다.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를 키우겠다는 목표로 젊은 인재를 발굴해 강도

높은 어학과 직무 교육 등을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현재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에서 운영되고 있다.

수료생들은 전원 취업에 성공했고, 현지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김 회장은 건강이 악화되기 전

주로 베트남에 머물며 GYBM 학생들의 사감, 선생님, 대부이자 할아버지를 자처했다. 교육 프로그램 운영뿐 아니라

학생들의 생활을 돌보고, 현지 사업가나 기업들을 살피며 학생들의 진로 개척에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년들과의 교류는 그의 마지막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기업가는 바로 이런자세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순간 한순간이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 여러분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을 거점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만큼 이 나라에 세계를 담아서

봐야 합니다. 그 나라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거점은 인도네시아라고 하면서 마음은 서울에 두고,

한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 열심히 하다 보면 남다른 생각을 얻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쉬어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좋은 발상을 하게 되고 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가 있게 됩니다.

(2016년 10월11일, 2017년도 GYBM 연수생과의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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