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세상과 사람, 진리를 가르쳐준 다큐멘터리의 세계 (장강복 동문, 다큐멘터리 PD 생물공학과 85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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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동문회 작성일20-01-16 14:32 조회531회 댓글0건본문
세상의 이면을 끄집어내 말하는 이들 덕에 우리는 잊었거나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있는 그대로 눈앞에 보여주는 말하기 방식이 그중 가장 강렬하다. 현실을 보여주되 일정한 관점을 유지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과 행동을 불러오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힘. 이런 다큐멘터리를 향한 외길을 27년간 걸어온 이가 있다. 다큐멘터리 PD 장강복이다. 글 권라희 / 사진 김성재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말걸다
제작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장강복 PD는 엊그제 남아프리카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아직 시차 적응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어떤 다큐멘터리 를 준비 중인지 물었다. 하나는 지구 환경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 나는 문화의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수천 년을 살아서 남아프리카에서는 ‘생명의 나무’라고 부르는 바오밥 나무가 지구온난화 때문에 잇따라 죽고 있어요.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School Strike For Climate)’을 이끄는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 (Greta Thunberg)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죠. 이에 영향을 받은 독일·프랑스·미국·호주·뉴질랜드·아시아의 청소년들을 만나고 돌아 왔어요.”
또 다른 하나는 1969년 멕시코에 태권도를 전파한 문대원 관장을 중심 으로 그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만큼 그곳의 온전한 문화로 자리 잡은 멕시코 태권도 50년사를 짚었다. 그는 이렇게 전 세계를 돌며 촬영 한 다큐멘터리를 1월 경 방영할 예정으로 편집 중이다. 다큐멘터리 한 편 을 만들기 위해 일 년의 반절은 해외에 머문다고 한다.
“다큐PD는 이야기꾼이예요. PD가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죠. 어떤 시선 으로 무엇을 전달할 것이냐를 정하고, 거기 집중해서 관련된 것만 기록을 해요. 어떤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는 거예요. 같은 대상이라도 해도.”
장강복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늘 화제의 중심에 선다. KBS스페셜 <플라스틱 지구>는 전 세계 생수를 무작위로 수집해 검사하고 모든 샘 플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 결과를 낱낱이 보여줘 충격을 안겼다. 우 리가 무심히 쓰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를 떠다니며 결국은 우리 뱃속에 들어올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눈앞에서 마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멈추지 않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윤리적 소비와 생 태적 일상도 제시해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회적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무수한 경쟁작을 제치고 ‘2019 방송통신위원회 방 송대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그에게 무 엇이 좋은 다큐멘터리인 것인지 물으니 현명한 답변이 돌아온다.
“자신이 세상에 전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고, 그게 어떤 가치를 갖고 있 느냐, 그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죠. 소재나 대상에는 제 한이 없어요. 길가의 한낱 돌일지라도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다큐멘터리죠.”
보편타당한 가치를 담는 다큐멘터리의 세계
다큐멘터리 PD 장강복이 지난 27년간 제작한 작품은 헤아리기 어렵다. 직접 현장에 뛰어든 작품 외에도 선후배들의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에도 열정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만들어낸 작품 중 몇 가지만 꼽 아달라고 하니 난감해하면서도 그는 <인간극장>을 첫 손에 꼽았다.
<인간극장>은 KBS-1TV에서 2000년에 첫 방송을 한 이래 무려 19년 째 방영 중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연속극처럼 5부작으로 만드는 사례 는 한국이 유일하다. 외국에서는 사생활 공개를 허락지 않아 휴먼 다큐멘 터리를 재연으로 제작하는 것과 달리, 인간극장은 사연의 실제 인물을 밀 착 취재한 방식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크다.
“<인간극장>은 휴먼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예요. <인 간극장>이 이렇게 오래 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어요. 그만큼 다큐PD들이 진정성 있게 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겁니다. 그 진정성이 화면을 뚫고 나와요. 출연자들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그대로 드 러나거든요. 그걸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봤고 그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 던 것이지요.”
사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게 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다큐 멘터리지만 과연 그럴까, 그것이 다일까 하는 것. 이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 없이 진솔하게 답했다.
“카메라를 대는 순간 왜곡이 시작돼요. 실제 출연자가 가진 것들이 그대 로 투영되지만, PD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에 따라 이야기가 전 개되는 것이죠. PD마다 그 대상에게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집중 하죠.”
또 다른 작품으로 그는 기업 관련 다큐멘터리로 <글로벌 성공시대> (2011~2013) <히든 챔피언>(2013)을 꼽았다. 해외에서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 시장을 개척해 진정한 리더로 우뚝 선 이들을 만난 다큐멘 터리로, 참된 기업가 정신을 담은 작품이다.
“땀으로 이룬 가치는 매우 소중하거든요. 보편타당한 가치죠. 사람들이 흔히 쉽게 돈 벌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번 것은 또 쉽게 나가요. 이런 다큐 를 보면 제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중요 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지 보여요.”
다큐멘터리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
“사실 다큐PD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죠. 저도 작품을 만들 때마 다 한계를 느껴요. 다큐하겠다는 후배들이 우루루 들어왔다가 열에 아홉 은 나가고 하나만 남아요. 그만 둘 때는 이유가 100가지지만 지금까지 다큐하는 후배는 이유가 하나뿐이에요. 이 일만큼 보람과 희열을 주는 일 이 없으니까.”
공익성을 앞세운 다큐멘터리는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는 반면, 방송구 조상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제작 PD, 특히 외주제작사 대 표로서는 고심이 클 터. 사실 방송대상을 수상한 <플라스틱 지구> 이후 에도 제작 여건이나 편성 조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앞서 이야기한 땀의 가치를 소중히 하듯 한 편마다 대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 고 정성을 쏟아 인정을 받는 것일 뿐.
“다큐멘터리PD이기에 항상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경험할 수 있어요. 아 프리카 피그미족부터 마야인, 잉카인까지, 노숙자부터 예술가, 대기업 회 장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죠. 그들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봐요. 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찍으려면 같이 사는 거예요.”
그는 여전히 다큐멘터리 PD로서의 본질을 놓지 않았다. 저마다 어렵지만 꿋꿋하게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함께 걷는 사람들을 그는 동지라고 불렀다. 친구나 형제보다도 소중하고 자신에게는 그런 후배들이 있어 행운이라며 흐뭇하게 웃었다.
어제의 시간, 다큐멘터리로 향한 길
“아주대 재학 시절은 제게 사회를 보는 눈을 갖게 한 시간이죠. 격변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밤새도록 선후배와 토론을 하고 열정적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 경험이 다큐PD로서 사회를 넓게 보고 사람을 깊이 있게 보게 된 바탕이자, 자양분이 됐죠.” 그는 사회에 나가서 진정한 꿈을 찾은 경우다.
그는 아주대학교 85학번 으로 생물공학을 전공했지만 그때는 자신이 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졸업 때쯤 언론계로 가려고 방향을 정했다가 교육자였던 아버지 의 영향 때문인지 EBS교육방송에 들어갔다. 교육방송에 들어가 영상 공 부를 하다 보니 이게 자신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특히 다큐멘터리 가 자신의 시야를 확 넓혔기에 본격적으로 그 길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아직 갈 길을 찾고 있는 아주대학교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는 지 물었다. 그는 아직도 인생을 모르겠다며 손사래 치면서도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설령 가보니 잘못된 길이 었대도 후회는 남지 않기 때문에. 그러다보면 제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며 진심어린 조언을 남겼다.
장강복 PD는 앞으로 다큐영화를 제작해 한 사람의 사랑이나 도전, 눈물 짙은 가슴 찡한 사연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유해주고 싶다는 꿈 을 밝혔다.
“제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배워요. 휴먼다큐의 주인공을 만나서 깊이 있 게 취재를 하다보면 그분들이 제게 보편타당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지요. 인생의 진리를요. 그렇게 배운 가치를 저도 생활인의 한 사람으로서 삶을 통해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