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 티타늄 개발, 이동* 동문(재료84) 인터뷰2009.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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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동문회 작성일20-01-02 11:16 조회373회 댓글0건본문
세계 다섯 번째로 스펀지 티타늄 개발에 성공한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창원)의 이동*(재료84, 박사) 동문을 만나본다.
■ 스펀지 티타늄 개발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스펀지 티타늄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스폰지 티타늄은 순수 금속티타늄이 스폰지처럼 기공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다공질 형태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마그네슘(Mg)과 사염화티타늄(TiCl4)의 반응에 의한 제련과정으로 제조됩니다.
이러한 스폰지 티타늄을 용해하여 괴를 만들고, 그 괴를 압연이나 압출하여 판재나 봉재를 제조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봉/판재가 산업에서 사용되는 티타늄 부품 제조용 초기소재입니다.
따라서, 스폰지 티타늄은 티타늄 부품을 제조하기 위한 초기소재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정도에서만 생산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독점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전량수입하고 있었습니다.
■ 개발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최대 난제는 어떤 것 이었나요?
스폰지 티타늄 제조를 위한 원료가 마그네슘과 사염화티타늄인데, 이들 모두 다루기 까다로운 화학물질이므로 안정문제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특히 대량 생산 시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참여기업과 함께 이러한 문제를 연구를 통해 해소하였습니다.
■ 스펀지 티타늄의 사용처와 가치는 어떻게 되나요?
1. 국내 스폰지 티타늄 적용 산업 분야 및 년 간 수요
티타늄 부품제조는 무엇보다 원자재 생산기술이 확보돼야 하며, 불행히도 세계적으로 소수의 국가만이 노하우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기술을 자체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티타늄 스펀지 생산기술의 확보는 티타늄 금속원자재 생산을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국내 티타늄 산업이 미칠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됩니다. 단기적으로 스폰지 티타늄만의 생산만 이루어지더라도 년 간 1,000억 수준의 수입대체가 가능하며, TiCl4 제조 및 MgCl2 분리 기술이 후속으로 개발되면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더욱 향상되어 국내 8500톤, 4,000억 의 티타늄 산업경제는 일대 전환점을 맞을 것입니다.
■ 재료연구소에 연구원으로 계시는데, 간략하게 재료연구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재료연구소는 미래지향적인 첨단소재를 개발하고 산업에 응용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정부출연연구소입니다.
■ 언제부터, 어떻게 연구소에 근무하시게 되셨습니까?
아주대 석사 졸업 이후 1991년부터 근무하였으며 근무 중 1998.12 ~ 2002. 12 동안 러시아에 한-러기술센터에 파견근무하면서 스폰지 티타늄 제조기술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 기술에 대한 핵심 노하우를 현지에서 습득했고, 귀국 후 참여기업(옥산IMT) 와 공동 개발해 결실을 얻었습니다.
현재는 분말재료연구그룹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연구하시는 일에 어려운 점이나 힘든 점은 없으신지요? 연구실에서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십니까?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의 안정된 연구업무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으며 또한 저희는 관련기업과의 공동연구에 유익한 연구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에 연구수행에 어려운 점은 없다고 봅니다. 연구소 출근하면, 지경부 및 교과부 직원들과의 약간의 대외 업무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함께 일하는 연구원 학생들과 연구결과에 대한 미팅으로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 하시는 일에 보람을 언제 느끼시나요?
연구 사업을 착수할 때 산업에서의 흥미가 있는 분야 그리고 좋은 연구결과를 획득하더라도 가격경쟁력이 있는 분야만 연구를 고집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국산화로 연결되었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습니다.
■ 가족관계는 ?
아내와 초등 5학년 남아 쌍둥이입니다.
■ 대학교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나요?
공부는 잘 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공부 및 학교생활 모두 약간은 낭만과 멋을 따라서만 흉내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공분야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착은 있었습니다.
■ 대학생 시절, 동아리활동이나 써클활동 등 학업이외의 활동은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축구동호회에서 활동한 바 있습니다.
■ 대학생 시절 기억에 남는 교수님이 계신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안재환 교수님입니다. 제가 4학년때 안교수님이 부임하셨고 그 인연으로 대학원에 진학, 대학원 시절 중 금동화 박사 (현 KIST 원장님), 정형식 교수님 (전 재료연구소 소장님, 현 아주대 교수님) 과의 인연에 발판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제가 연구계에 종사하고 현재의 결과를 얻게 해주신 계기와 지원을 안재환 교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