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로 빛이고 바람이고 사랑이다. - 시인 신현* 동문(국문83)(2009. 10. 2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동문회 작성일20-01-02 13:36 조회374회 댓글0건본문
우리가 바로 빛이고 바람이고 사랑이다.
- 시인 신현* 동문(국문 83)
30년 원천벌에
미래를 넘나드는
아주인의 손들이 꽃을 피워올린다.
젊음의 마지막까지 생애의 끝까지
희망을 전할 우리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갈
우리는 아주인이다.
개교 30주년 기념 축시인 ‘우리가 바로 빛이고 바람이고 사랑이다.’의 일부이다. 이를 쓴 시인은 바로 신현* 동문(국문83)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을 꿈꾸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등단 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시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신현* 동문은 등단한 지 6년 만에 그녀의 두 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로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었고 지금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이 되기까지 그녀에게는 어떠한 사연들이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인 신현* (인문학부 83) 동문>
“대학 시절에 우연히 쓴 시를 시작으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죠.”
사실 그녀는 미대 지망생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책을 많이 읽고 싶어 선택한 곳이 인문학부에요.”라는 그녀는 대학 입학 후 거의 모든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잃어버렸던 열정을 갖고 다시금 꿈을 품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2학년 때 문예사조사라는 강의를 들었어요. 저는 바로크 문학에 대한 발표를 맡았는데, 당시 준비하면서 느꼈던 건 ‘음악, 미술, 문학 등 모든 예술은 한 곳에서 만난다.’는 거예요. 당시 사람들이 감성을 교류하면서 생겨난 결과물이 결국 예술로 승화되는 거니까요.”라는 그녀는 사실 입학 후에도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그녀는 문학을 통해서도 미술을 접할 수 있다는 발견을 하고는 절로 기운이 솟았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헌 책방을 다니면서 미술, 철학, 건축 등의 예술 관련 서적은 다 사서 읽었던 그녀는 이 시절 섭렵한 지식과 문장력이 1998년 발간한 사진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과 2002년 발간한 미술에세이‘신현*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 미술’의 초석이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모습>
이렇게 책과 예술을 좋아하는 그녀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했다. “4학년 때였어요. 당시 문예창작 수업에서 시 쓰기 과제로 제출한 것을 보고 조창환 교수님께서 ‘감수성이 매우 뛰어나다. 앞으로 신현*한테 기대해보자.’라며 예상치 못한 칭찬을 하셨죠.” 조 교수의 이러한 칭찬 한마디가 잠자고 있던 그녀의 잠재력을 춤추게 했다.
사람 냄새나는
한여름 햇살에 장미는 취했어 노랗게 젖어 부풀었어
부끄러워 부끄러워 노을 한 자락 뒤집어 썼어
솔바람 뒤에 숨었어
나부끼는 바람따라 두 평짜리 방으로 들어섰어
회랑처럼 벽이 온통 그림이었어
저마다의 소리와 빛깔로 울고 웃었어
장미는 꽃병에 꽂히기보다 그림 곁에 눕고 싶었어
사람 냄새나는 그림을 껴안고 싶었어
영혼과 육신을 곱게 펴어 그림을 지키고 싶었어
밝고 어둔 구석 액자 속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어
화-한 임종이었어 하얀 침상에 거꾸로 물구나무 서 갔어
그림이 빛나게 죽음이 따스하게 온몸을 비웠어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바로 이 시로 아주문학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20여 년간 시를 쓰게 된 초석입니다. 한창 젊고 푸르른 시절에 쓴 시라 그런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면 참 싱그러운 느낌이 들어요.”라며 첫 시를 쓰던 그때의 순수한 감성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 냄새나는’을 시작으로 재학 시절 많은 시를 썼고 세 번의 아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취업보다 시(詩)!!
미대를 준비하면서 늦어진 입학 때문에 서른 살에 늦은 졸업을 한 그녀는 시에 대한 열정으로 취업이 아닌 배움을 택했다. “시를 쓰기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죠. 그래서 졸업을 하고 백수로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하듯 다양한 책을 독파하며, 문장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막상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앉아서 시를 쓰려니까 아무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누군가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했어요.”라는 그녀는 문화센터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문화센터에서 시를 가르치던 스승은 이승훈 시인이었다. 이승훈 시인은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을 수상한 유명시인이자 당시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었다. “이승훈 교수님께서 같은 시인이셨던 조창환교수님과 함께 제가 쓴 시들을 ‘현대시학’이란 시 전문지에 10편을 추천해주셔서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이 교수의 권유로 응모한 그녀의 시는 당선되었고, 1990년 4월 현대시학에 실리면서 그녀는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를 생각하고 꿈을 꾸었죠. 그 당시의 시는 함축적이고 짧은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저는 꾸밈없는 삶과 치열한 일상을 시에 담아내고, 그 속에서 남다른 상상력과 강렬한 개성이 돋보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실제로 그녀의 시는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세상에게 말하듯 풀어쓴 것이 특징이다. 또한 그녀의 모든 시에는 희망과 꿈이 담겨있다.